TV속의 ‘붕어’
붕어: 명사. 잉어 과의 물고기. 몸길이20㎝~40㎝. 편평한 몸에 입이 작고 수염이 없음. 몸 빛깔은 보통 등이 황갈색 배는 은 배색이나 사는 물에 따라 빛깔이 다름. 개울이나 못에 삶.

동아 새 국어사전에서는 붕어를 이렇게 정의 내린다. 이런 정의가 아닐지라도 우리는 붕어가 어떤 물고기 인지 또 어떻게 생겼는지를 잘 알고 있다. 익숙하게 보아왔고, 먹어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붕어는 또 다른 뜻을 갖는 명사가 되었다.
그 발원지가 어디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민족 정론지를 자부하는 딴지일보를 통해 그 용어가 널리 퍼진 건 사실이다.
딴지 일보에서 말하는 붕어는 ‘티부이 방송 쑈 프로그램에 주로 서식하며 리듬 체조를 장기로 하고 노래 할 줄 몰라서 반주 테이프에 맞춰 입질만 하는 가수인지 춤꾼인지 개그맨인지 구분이 안 되는 연예인’ 을 지칭하는 학술 용어란다.
립싱크를 위주로 하고, 오락 프로그램에 출연해 각종 개인기를 펼쳐 보이며, 음악과는 별 상관없는 신변잡기를 늘여놓는 가수를
딴지일보에서 붕어라고 지칭한 것은, 이 땅의 왜곡된 가요계 풍토,
공중파 방송의 지나친 개입, 방송사PD에게 금품을 줘가며 소속가수를 띄워보려는 연예기획사, 다양성이 보장되지 않은 획일화된 가요계, 가수로서의 자각이 없는 가수들에 대한 신랄한 비판의 시작이었다.

사실 난 딴지일보의 시작에 동의한다. 만약 딴지일보의 논조가 립싱크를 위주로 하는 가수들에 대한 비판에만
그쳤다면, 즉 붕어란 용어를 통해 립싱크를 위주로 하는 가수들에만 비판을 가했다면 이야기가 달라졌겠지만 말이다.
기실 붕어란 용어는 다소 심한 말이 아닐 수 없다. 하나의 인격체를 붕어라 지칭 하는 건 아무리 풍자와 비판을 밑에 깔고 있다 할지라도, 그래서 독자에게 웃음을 안겨줄지라도, 그 말속에는 강한 ‘비하’의 뜻이 숨어있기 때문에 사용하기가 저어된다. 듣는 이에 따라서는 욕도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제그들을립싱커라부르자

그렇다면 해법은 뭘까? 그들을 가수라 지칭한다면, 진정 가수라고 부를 수 있는 이들은 무어라고 지칭해야 될까?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대중문화 속에 우위를 가리자는, 즉 서열을 구분 짓자는 말은 아니지만 적어도 우리가 여태껏 가수라 불렀던 이들, 자신의 목 하나만을 믿고 청자에게 제대로 된 소리를 들려주고자 하는 이들은 분명 이들 립싱크 가수와 다르다는 점은 확실하다.
가수란 용어로 하나로 뭉뚱그려 정의하기에는, 이들 진정한 가수들이 고수해온 입장이 좀 억울한 듯 느껴진다. 그럼 이들을 뭐라 불러야 할까? 해답은 역시 딴지일보에서 나왔다.
딴지일보 수습기자 니조띠까봐는 립싱크를 위주로 하는 가수들을 립싱커라 부르자고 제안하며, 립싱커의 뜻을 이렇게 정의한다.

립싱커(Lip-syncer): n. 가수와 유사한 활동을 하는 엔터테이너. 스스로 가수라 칭하기도 하나, 노래는 음반 녹음할 때 단 한 번만 함.

이 말에도 역시 비하의 뜻이 숨어있지만 붕어란 원색적인 용어보다는 한결 낫다.
이 글을 쓴 니조띠까봐는 립싱커란 단어를 널리 사용하자고 주장하는데, 나 역시 그 말에 공감한다. 비하의 뜻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이 말보다 더욱 립싱크 위주의 가수를 제대로 지칭하는 단어가 없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가수는 노래하는 사람을 뜻하고, 립싱커는 노래 반주에 맞춰 립싱크를 하는 사람을 뜻한다.’고 가정해 보자. 얼마나 명확한 정의인가?
이 발언이 우스갯소리로 들리는 독자도 있을 터이지만. 나는 진정 립싱커란 단어가 널리 사용됐으면 한다. 기본적으로 TV 화면에서 립싱크를 하는 가수 보다 생 목소리로 관객과 호흡하려는 가수를 진정한 가수라 생각하는, 그래서 후자 쪽에 마음자리가 기울어 있는 나에게 이 주장이 매우 솔깃하게 다가왔다는 사실을 부정하진 않겠다. 그렇다고 립싱크를 완전히 부정하고, 립싱커를 없어져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다는 점 또한 밝혀둔다. 립싱크는 때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것, 립싱커 역시 자기만의 영역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립싱크를 좋아하고, 어떤 이들은 가수를 좋아할 수 있다. 그것을 부정 하자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가수라는 용어에 맞는 행동을 보이지 않는 이들한테까지 가수라는 용어를 쓰는 건 적절치 않아 보인다. 그들이 가수라고 한다면 그들과 다른 형태를 보이는, 즉 라이브로 대중들과 만나는 다른 가수들은 뭐라 불어야 한단 말인가? 가치판단을 뒤로 하고서라도, 립싱커란 용어의 사용은 ‘립싱크를 위주로 하는 가수’ 들의 형태에 정확히 부합 되기 때문에, 매우 적절한 용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도가수인가?

서문이 길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앞서 립싱커에 대해 다소 길게 이야기 한 것은 바로 이은미란 ‘가수’를 소개하기 위함 이였다. 그렇다면 왜 이은미를 소개하는데 립싱커에 대한 이야기가 필요했을까? 그것은 립싱커들에 대해, 또 가요계의 잘못된 풍토에 대해 비판의 직격탄을 날린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아마 립싱커란 용어가 정착 되었다면, 그래서 가수라는 이름을 걸고 나오는 이들이 좀 더 진지하게 자신의 입장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면, 또 가요계에 만연 잘못된 풍토가 조금이나마 개선될 여지가 있었다면, 2001년 5월에 벌어진 필화사건이라고 까지 불린 사태가 벌어지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2001년 5월, 남성잡지 GQ 에 이은미의<당신도 가수인가?>란 글이 실렸다. 정확히 말하면 이은미가 구술하고 기자가 대필해서 올린 형식 이였는데, 이 글이 한동안 적잖은 파문을 일으켰다.
당시 이은미는 가요계의 풍토를 바꿔보자는 뜻으로, 제작비를 천정부지로 뛰게 하는 그리고 가수의 얼굴조차 보이지 않는 뮤직비디오 문제, 장삿속에 매몰된 가수들을 희생시키는 음반기획사의 형태를 비판했다. 그리고 가수로서 자각이 없는 후배가수들에 대한 칠타와 함께, 노래 실력보다는 음반시장최대 수요인 10대들의 취향에 맞는 이미지로만으로 승부하려는 가수와 립싱크를 위주로 하는 가요계풍토에 대해 전반적인 비판을 가했다.
아마 두루뭉술하게 이런 비판을 가했다면 이은미의 글이 그토록 파문을 일으키진 못했을 것이다. 문제가 된 것은 이은미가 이런 발언을 하면서 이니셜로 거론한 몇몇 가수들에 대한 비판 이였다.

<당신도 가수인가?>란 글에서 이은미는 뮤직비디오만으로 승부하려는 신인가수 K와, 녹음과정에서 매 음마다 컴퓨터로 교정 해주지 않고서는 들어줄 수 없는 노래를 부르는 그룹 F, 의상 콘셉트로 자신들의 새로운 음악을 소개 하던 그룹 S, TV에 진출하더니 개그맨이 된 것처럼 구는 K, 노래보다 얘기를 더 많이 하면 연예인 누구누구하고 친한지가 더 중요해진 L, 그리고 가수가 아니라 마케터처럼 보이는 S 등을 비판했다. 실명은 아니지만 이은미가 예로 든 이들이 김범수, 핑클, SES, 김장훈, 이현우, 서태지란 것은, 이미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다.
이러한 발언 때문에 이은미는 한동안 곤욕을 치러야 했다. 한쪽에서는 ‘후련하다‘ ’2탄을 준비 하세요‘ 등 이은미의
용기를 칭송하는 편이 나온 반면, 다른 쪽에서는 ’비판할 자격이 있느냐‘ ’안티 이은미 운동을 벌이자‘ 는 노골적인 불만이 쏟아져 나왔던 것이다. 또 이은미 팬클럽이 운영되는 사이트가, 이은미에게 비판당한 가수의 팬들이 보내오는 항의메일로 한때 다운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은미는 자신에게 쏟아진 비판에 대해 의연했다. 할 말은 했다는 것이다. 이은미는 ‘내가 이니셜로 거론한 가수의 경우 그 팬들도 그 문제를 알고 있다는 거 아닌가. 그들과 싸움하자는 게 아니다. 제대로 된 기본을 만들어 보자는 거다. 가수라면 자기 음반에 책임을 져야한다’ 며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은 것임을 분명히 했다.

가수란노래하는사람이다.

이은미는 가수로서 자의식이 강하다. 그것은 자존심일수도 있고, 자신의 앨범을 사서 음악을 듣는 팬들에 대한 책임감 일 수도 있다. 그것은 무엇이든 간에 그는 ‘가수란 노래하는 사람’ 이라는 기본에 충실하려 노력한다. 그런 그에게 가수 로서의 기본적인 자의식도 없는 가수가 못마땅했음은 당연한 것이다.

“가수의 사전적 의미가 ‘노래 부르는 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에요. 왜 가수가 방송에 나와 100m 달리기를 하고, 번지 점프를 하고, 토크쇼에 출연해 사람을 웃겨야 하는 겁니까. 저는 노래하는 재주밖에 없고, 음악인은 항상 무대에 있어야 하며 그때의 모습이 가장 멋지다는 확신을 갖고 있어요. 또 어느 날 갑자기 떠서 100만장 200만장 팔리고 사라지는 가수가 되고 싶진 않아요. 히트 음반이 나쁘다는 말은 아니지만 대중적으로 성공한 음반이 반드시 음악적으로도 성공 했다고 할 수 없죠. 1집 <기억 속으로>가 지금도 꾸준히 나가요. 10년 동안 30만장 팔았어요. 2집도 비슷하고요. 제 음악이 10년 넘는 생명력을 갖고 있다는 게 자랑스러워요.”
이은미의 이 말은 연예인들을 비하하는 말이 아니다. 그 말은 가수라는 이름을 달고 대중 앞에 나왔으면 그 이름에 맞는 행동을 보이란 얘기다.
“엔터테이너, 연예인이라고 밝히면 아무 문제가 안돼요. 근데 정작 그들이 되고 싶은 건 연예인이고 가수는 그냥 가져다 쓰는 거예요. 연예인이 되기 위해 가수를 선택하는 거죠. 그러니 가수가 탤런트 대접받고 코미디언 대접 받는 거 아닙니까.”
물론 만능 엔터테이너를 원하는 방송매체의 속성 때문에, 또 그 방송매체에 얼굴을 들이밀어야만 앨범이 팔리는 시장 현실 때문에, 가수들이 만능 엔터테이너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또 대중 가수를 이미지 상품으로만 여기는 연예기획사의 압력 때문에라도 가수들은 만능 엔터테이너로 탈바꿈해야한다. 그것이 현재 한국 가요계의 일반적인 풍토다.

이은미가 이점을 모르는 게 아니다. 그러나 그는 우선 가수들이 자신이 가수하는 것을 자각하고, 가수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자신이 가수라는 이름으로 대중과 만날 때 지켜야할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았으면 하는 소망을 내비친다.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지만, 우선 가수들이 먼저 가수로서의 권리를 찾아야 한다는 말이다.
“지금의 밴드 구성하는데 4년 반 걸렸어요. 마이크 깨고 드럼 채 날리면서 제작자와 싸운 시간이에요. 제작자들은 가수를 그저 딴따라라고 생각하고 존중하려 하지 않아요. 결국 가수가 권리를 찾는 수밖에 없어요.”
물론 어려운 일이고 한 번에 해낼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적어도 자신이 가수하는 사실을, 또 가수는 노래 부르는 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을 가리킨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가수로서의 권리를 찾는 일이 그다지 요원한 일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그 실례를 이은미에게서 찾아 볼 수 있다.

맨발의디바

이은미는 1966년생이다. 가수가 되기 전의 그의 생활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우리는 그 이유를 “인간 이은미는 보여 주고 싶지 않아요. 가수니까, 또 그 덕분에 이렇게 인터뷰하는 거니까 대중에겐 무대 위의 이은미로만 보이고 싶어요. 란 이은미의 말에서 어렴풋이 짐작 할 수 있다.

사라 본을 좋아했던 고교시절, 그는 ‘빽판(불법 복사 음반)’을 구하기 위해 청계천을 이 잡듯 뒤지고 다녔다.
딱히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지만, 그렇게 구한 음반으로 그의 음악적 성정은 키워졌다.
그런 그에게 기회가 다가온 것은 1988년. 그의 목소리를 들은 선배의 권유로, 그는 신촌의 라이브 클럽 ‘다운타운’ 에서 노래를 부르며 음악인생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듬해, 신촌블루스 3집 객원가수로 참여해 <그댄 바람에 안개로 날리고>를 불러, 대중에게 자신의 이름을 처음으로 알리게 된다.
이은미가 솔로로 데뷔한 것은 1992년의 일이다. 이해에 그는 캐나다 토론토에서 외국인 세션과 함께 녹음한 데뷔앨범을 내놓았고, 그 해 12월 첫 콘서트를 갖는다. 이 앨범에는, 이은미 하면 떠오르는 노래 <기억 속으로>가 담겨져 있었는데, 이 노래가 드라마 <모래 위의 욕망>의 주제곡으로 쓰이면서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이은미의 이름이 대중의 머릿속에 깊이 각인이 된 것은 아니었다. 이은미가 인기가수로 거듭난 것은 2집, <어떤 그리움>을 발표 하고 나서였는데, 그 사이 이은미는 라이브 콘서트를 통해 관객들과의 만남을 가졌다.
흔히 이은미를 가리켜 ‘맨발의 디바’ 라고 일컫는다. 맨발의 디바라는 별칭은, 그가 공연장에 항상 맨발로 등장하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그가 맨발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것은 199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두 번째 콘서트는 93년 마당 세실극장에서 하루 2회 11일간 했어요. 닷새째 되는 날 ’아‘ 소리도 안 나올 정도로 못이 꽉 잠기는 거예요.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는 건데 왜 이리 아프고 힘들까 생각하며 거울을 보니 거기 들어있는 얼굴은 제가 아니었어요. 청중 앞에서 잘 보이고 싶은 허영 든 초라한 여자가 거기 있는 거였어요. 그래 화장도 지우고 몸치장 도 다 풀고 나니 마지막 남는 게 신발이었어요. 그래 신발도 벗어 버리고 무대 위에 올랐지요. 그때부터 무대에서는 항상 맨발이었습니다.”

무대 위에서는 가식이 필요 없다는 것은 깨닫게 된 이은미는 이후 라이브 부대에서는 항상 맨발로 관객들과 만났다.
TV에 출연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맨발로 TV에 출연했다가 담당PD가 감봉 처분을 받은 일도 있었다.
이은미에게 맨발은 자유를 상징한다. 공연 중에 발에 핀이 박히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발에 무수히 많은 상처를 입으면서도 그가 맨발을 고수하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다. 관객에게 보여주어야 하는 것은 휘황찬란한 액세서리로 치장한 화려한 모습의 이은미가 아니라, 자신이 불러야할 노래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방송과의불협화음

1993년 발표한 2집 <어떤 그리움>의 타이틀 곡 [어떤 그리움]으로, 이은미는 무명가수에서 인기가수로 탈바꿈할 수 있게 되었다. 방송에도 출연하기 시작했지만 이은미와 방송과의 관계는 처음부터 그다지 좋지 못했다. 방송사PD들이 요구해 오는 것들을 ‘ 가수 이은미 ’가 수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은미는 어린이들과 함께 동요를 부르라는, 또 자기 노래가 아닌 ‘국민가수’의 노래를 부르라는 요구를 이해할 수 없었고, 그것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그렇게 예쁘지도 않고, 춤도 못 추며, PD의 요구를 묵살하는, 그리고 방송의 생리를 거부하는 그를 다시 불러줄 방송 프로그램은 없었다. 그렇게 이은미는 자연스레 방송과 멀어져갔고 1년에 약 10회 정도 방송에 출현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라이브 무대를 제외하고는 이은미의 얼굴을 여간해서는 볼 수 없는 것이다. 다른 프로그램 에서 이은미를 섭외하지 않는 탓도 있겠지만, 이은미가 프로그램을 고르는 탓도 있다. 이은미는 라이브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프로그램이 아니면 여간해서는 출연을 자제한다. 아무리 애를 써도 녹음한 걸 틀기만 하면 되는 AR테이프만큼의 음향을 뽑아내지 못하지 때문이다.

“방송을 할 때마다 제일 속상한 일이 음악을 제대로 연주 할 수 없다는 거죠. 그래서 댄스 하는 친구들이야 잘 차려입고 나와서 입만 뻥끗하면 되지만, 음악 하는 사람들은 음향에 신경을 써야 하잖아요.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그런 음향 시설이나 악기로는 립싱크의 정제된 사운드를 따라 갈수 가 없어요. 자연히 가창력 있는 가수들도 TV에만 나오면 과장 된 몸짓으로 본인의 소리보다 ’오버‘ 하게 되요. 가수를 망가뜨리는 지름길이죠. 전 그게 싫었어요.”
여기서 립싱크가 유행할 수밖에 없었던 또 하나의 원인을 파악할 수 있다. 시스템이 제대로 마련되어있지 않았던 것이다. 아무리 가창력 있는 가수가 나와서 라이브로 노래를 불러도, 음악을 제대로 들려 줄 시스템이 마련되어있지 않다면 라이브의 매력은 반감될 수밖에 없다. 오히려 립싱크가 훨씬 좋아 보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다 보니 라이브를 할 수 있는 가수도 립싱크를 하게 되고, 그 결과 라이브 가수가 설 수 있는 무대는 더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게 된다.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문제는 한국 방송 중, 라이브를 들려줘도 괜찮을 만큼의 여건이 마련된 프로그램이 현재<윤도현의 러브레터>와
<수요예술무대> 두 개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그리도 이은미가 주로 출연하는 곳이 바로 이들 프로그램이다.
이은미는 라이브를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시설이 되고, 가수를 불러다 놓고 노래 이외의 일을 시키지 않는 프로그램에는 출연한다. 일부러 방송을 멀리하지 않는 다는 말이다. 대중가수는 대중과 호흡해야 하기 때문이고, 이런 기본적인 시스템이 정착된 방송 프로그램에서 노래를 불렀을 때, 방청객뿐만 아니라 시청자들까지 라이브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중과 일부러 거리를 두고 싶진 않아요. 불특정 다수가 두렵긴 해도 밴드가 직접 나와 연주 하고 라이브로 노래하는 걸 대중이 접할 기회만 된다면 몸 아끼지 않고 뛰겠다는 거죠. 10대들도 처음엔 생소 한 듯하다 나중엔 표정이 달라져요. 이런 무대를 경험해 본적이 별로 없잖아요. 그런 기회를 어른들이 뺏어간 거예요.”
라이브로 노래하는 가수들의 무대를 본 사람은 알 것 이다. 라이브 무대가 얼마나 매력적인지를…….그런 매력적인 무대가 방송매체에 의해 차단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역량이 십분 발휘된 음악을 들려줄 가수들의 기회도, 그런 음악 을 들을 수 있는 시청자들의 기회도 모두 차단되고 있는 현실. 심각하게 고려해볼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몰락한귀족

방송과의 불협화음은 이은미를 라이브 콘서트 장으로 몰고 갔다. 음악인생을 라이브로 시작한 가수들이 걸었던 길을 그 역시 걷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 단독공연 60여회를 포함해 1년에 총100회 정도의 라이브 무대에 서 왔다.
그 사이에 꾸준히 신보를 발표 했는데 그 목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라이브 앨범 <라이브>(1995), 3집<자유인> (1997), 베스트앨범<Best&Pop>(1998), 4집<Beyond Face>(1998), 리메이크 앨범<Nostalgia>(2000), 5집<Noblesse>(2001), 베스트 앨범<Passion>(2002).

이 중 2집과3집 앨범 사이의 간극이 큰 것은 이때 음반제작자와 이은미 사이에 마찰이 있었기 때문이다. 라이브를 중시하는 이은미가 밴드를 구성하기 위해 제작자와 싸움을 벌였던 것이다. 싸움은 약 4년 동안 계속되었고 그 승리는 이은미 에게 돌아갔다. 그렇게 구성된 8명의 밴드는 현재까지 이은미와 함께 공연을 하고 있다.
라이브만큼이나 녹음을 중시하는 이은미는 앨범을 내놓을 때마다 마치 사투를 벌이 듯 녹음을 했다. 처음으로 프로듀싱까지 맡은 4집 앨범을 녹음할 때는, 거의 3달 반의 기간 동안 하루에 세 시간 이상 자지 못했고, 신보를 발매한 기념으로 열린 콘서트 현장에서 기절을 하기도 했다. 또 5집 앨범을 제작할 때는 80여 곡을 받아 이 중 10곡을 엄선하는 작업을 거치는 바람에 발표를 늦춰야했다. 이은미 다운 곡을 엄선하는 작업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던 것이다. 또 편곡한 노래를 이은미답게 부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그는 매번 심혈을 기울여 앨범을 내놓았다.
그의5집 앨범의 제목은 노블레스, 즉 귀족이란 뜻이다. 작금의 대중가요계에서 자신이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가란 고민의 결과로 쓰게 된 제목이었다.

“나 스스로가 대중음악계에서 몰락한 귀족 같았어요. 춤추지 않으면, 유머를 하지 않으면 가수가 아닌 시대에 혼자 도태된 것처럼 느껴졌어요. 사람들에게 점점 잊혀지는 것 같기도 했고. ’노블레스‘를 앨범제목으로 단것은 주변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지조와 품위를 지키며 내 음악세계를 펼치겠다는 다짐입니다.”
자기는 기본을 지키고 있을 뿐인데, 어느 때 부터인가 혼자 고고한 척하는 귀족처럼 되어 버린 현실. 이은미는 그 현실을 ‘노블레스’란 제목으로 상징화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란 가수의 기본적인 요건을 지키고 있는 그가, 자신을 귀족처럼 느낀다는 말은 무얼 뜻하는 걸까? 미리 답을 말하자면, 그것은 가수란 낱말이 변질되어 버린 말이란 사실을 뜻한다. 이와 관련해서 <가요, 어떻게 읽을 것인가>의 저자 박애경의 말을 들어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아직까지 가수라는 이름을 고수 하는 이들은 쇼 프로그램에 나와 춤추고 립싱크하고, 주말 버라이어티 쇼에 출연해 자학인지 피학인지 모를 연기를 보여 주어야하고, 토크쇼에 나와 입담도 자랑하는, 정작 노래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 주를 이루게 되었다. 노래만 제외하고 모든 것을 매끈하게 토털 엔터테이너들이 가수하는 이름을 유지하며 브라운관을 점령하는 동안 노래에 대해 자의식을 가지고 있는 자들은 가수라는 이름을 벗어 던지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가수와 뮤지션이라는 어감상의 거리는 연예인과 아티스트 사이의 거리와 그런대로 대응한다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가수는 엔터테이너, 뮤지션은 아티스트라는 공식이 일반화 되었다는 것이다.”
이은미는 가수다. 대중과 괴리된 채 혼자 고고한척하는 귀족은 물론 아니다. 또 자신을 뛰어난 가수라고 여기지 않는 것 같다. 자신에게 가창력이 좋다고 말하면 그는 코웃음을 친다고 한다. 지금 가수들이 얼마나 노래를 못하면 저럴까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는 대중과 호흡할 때 행복을 느끼는 대중가수다. 그런데 한국가요계는 그런 기회를 앗아갔다. 방송과 연예기획사의 밀월 관계, 기획사의 상품으로만 존재하는 자의식 없는 가수들, 그 가수들에게 일방적인 지지만을 보내는 팬들 모두가, 이은미에게 그런 기회를 앗아갔다. 단지 가수로서의 기본을 지키고자 했을 뿐인데, 이 땅의 가요계 풍토는 그 기본마저 제대로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로 왜곡되어 있었던 것이다.

2002년 여름에 불거진 기획사 PR비 비리는 왜곡된 가요계 시장을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었다. 이 사건을 통해 공공연한 비밀에 속했던 기획사와 예능 프로그램 PD와의 밀월 관계가 조금 이나마 드러나게 되었다. 몇몇 PD가 구속되고 SM이수만과 서세원이 비리 혐의로 검찰의 소환장을 받자 외국으로 도피했다. 검찰 수사 초창기에는 가요계 비리를 포함해 연예계비리가 일시에 사라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가요계 비리 근절을 외치며 거창하게 시작했던 검찰의 수사는 흐지 부지되고 말았다. 아주 극소수의 인사를 제외하고는 모두 불구속처리 되었고, 외국으로 나가 검찰의 소환에 불응했던 이수만과 서세원은 기소 중지로 처리되었다. 결과적으로 아무 것도 바뀌지 않은 것이다.

가요계 비리는 관련자 처벌만으로는 바뀌지 않을 정도로 뿌리가 깊다. 왜곡된 가요계 풍토를 바꾸지 않는 한 가요계 비리는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방송에 나가는 횟수가 음반 판매에 큰 영향을 끼치는 현실. 그래서 기획자가 어떻게든 자사의 신인가수를 방송에 내보내기 위해 방송 관계자들에게 뇌물을 줘야 하는 현실. 기획사가 들인 돈을 뽑아내기 위해 닥치는 대호 방송에 얼굴을 들이 밀어야 하는 가수들의 현실. 노래보다는 대중적으로 더 알려지길 원하는, 즉
‘뜨는’것만을 원하는 가수들의 행태. 막강한 소비 집단인 10대 취향에 맞추기 위해 음악보다는 비주얼 쪽에 더 큰 공을 들이고, 댄스 음악이나 발라드로 승부해야하는 현실. 이미지만으로 가수를 좋아해 그들에게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지 않고 맹목적인 지지만을 퍼붓는 팬들의 형태. 이 모든 게 바뀌지 않는다면 가요계 비리는 계속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은미 역시 가요계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진행 될 때 이런 의견을 피력한 적이 있다. 그리고 선배가수와 팬, 가수들의 각성을 촉구했다. “선배들은 왜 침묵하나요. 연예계 비리 사건이 터졌지만 다들 조용해요. 팬들도 방송사에 달라지라고 소리쳐야 해요. 가수들도 부당한 걸 요구할 때는 ’노‘ 라고 얘기할 수 있어야 해요.”
그러나 검찰의 수사는 종결되었고 가요계의 전면적인 개혁은 숙제로 남게 되었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이 한국 가요를 사랑하는 이라면, 한국 가요계가 얼마나 왜곡되어있고 썩어 있는지를 깨달아야 할 것이다. 변화는 거기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그래서 이은미 같은 실력 있는 가수가, 또 사회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자기 목소리를 내는 참여정신을 가진 가수가 인정받는 날이 오기를 진정으로 바란다.

이제 이글을 끝맺을 때가 되었다. 그 전에 마지막으로 이은미가 전하는 노래에 대한 생각과 라이브 예찬을 곱씹어 보자. 이은미가 어떤 가수인지, 또 이은미가 왜 라이브 공연을 계속해오는지를 확실히 때달을 수 있을 것 이다.
“살아가며 느끼고, 생각하거, 겪은 그 모든 것을 ‘나 또한 그렇다’며 가슴 깊은 곳에서 나누는 것을 노래라 생각합니다. 사람 좋고, 그립고, 못 만나서 갈증 나고, 만나서 행복해서 노래를 시작했습니다. 라이브 공연을 고집하는 것은 음반은 시간이 멈추고 굳은 것이지만 공연은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연체동물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두세 시간의 짧은 공연을 통해서 같은 시대에 같은 우수와 낭만, 열정을 갖고 우리가 함께 살고 있다는 것 자체가 위안이고 즐거움이라는 것을 노래로 표현하고 싶습니다.”

2003년 3월 ‘인물과 사상사’에서 발행한 ‘한국 영화산업 개척자들’ 중에
최을영님이 쓰신 ‘가수란 노래하는 사람이다’를 전체 발췌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