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7-03-14 13:58
[인터뷰] 내가 '베일 싸인 센 언니?'…겉만 본 이은미는 잊어라
 글쓴이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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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내가 '베일 싸인 센 언니?'…겉만 본 이은미는 잊어라

“이미 결혼했다고? 도대체 그게 언젠데?”



 

가수 이은미(50)에 대한 대중의 숱한 질문 중 하나다. 신촌 블루스 객원 보컬로 마이크를 잡은 이은미는 올해로 데뷔 26년 차다. 1992년 1집 <기억 속으로>를 통해 첫 정규앨범을 냈다. 이후 6집 <마 논 탄토(Ma Non Tanto)> 타이틀곡 ‘애인 있어요’로 만인의 애창곡을 만들어냈다. 900회가 넘는 라이브 공연에 이어 최근에는 미니앨범 ‘스페로 스페레(Spero Spere)’로 오랜만에 인사를 전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이은미의 인지도와 사람들에게 알려진 정보가 반비례한다는 것이다. 단지 신비주의로만 굳혀진 이은미의 진짜 단면은 어떨까. 우리가 몰랐던, 민낯으로 찾아온 그녀를 지난 15일 오후 ‘스포츠경향’이 만났다.

 

-공연 1000회 기록을 경신했어요. 

“첫 회 공연이나 지금이나 변한 건 없네요. 음악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오히려 멋모르고 했을 때가 더 쉬웠던 것 같아요. 갈수록 신중하고 어려워져요. 하나의 목소리로 변화를 준다는 것이 쉽지 않네요. 대중이 원하는 이은미를 놓치지 않으면서 새로움을 가미한다는 것이 딜레마죠.”

-그런 고심이 히트곡 ‘애인 있어요’를 탄생시킨 게 아닐까요. 그런데 이 곡 이후엔 방송 활동이 없어서 ‘공연만 하려는 가수’란 편견도 일부 있었어요.

“저는 원래 공연 위주로 활동했어요. 방송 분야에 재능도 없고요. 지상파와 케이블 채널의 음악 순위 프로그램에 출연하려면, 30분 30초란 제한된 시간에 맞춰 모든 것을 보여줘야 해요. 가수의 노래에는 곡을 만든 의도가 있어요. PD의 요구에 따라 자존심을 버리면서까지 무대에 서고 싶진 않아요.”



 

-공연이 없을 땐 정치 관련 자원봉사에 참여한다고 들었어요.

“제 음악으로 위안을 받는다는 분들의 말에 감사함을 느껴요. 저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제가 느낀 좋은 감정을 사회로 환원하려고 해요. 우리 사회엔 억울한 상황에도 작은 목소리밖에 내지 못하는 약자가 존재해요. 이런 사람이 절망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가 제대로 된 길을 가야 하죠. 그래서 나 자신부터 정치적인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 부당함에 맞서 싸우려고 해요. 최근에는 탄핵 가결 후 제7차 촛불 집회 문화제에 참여해 우리가 손에 들 초도 만들고, 시민들과 함께 ‘애국가’를 열창하기도 했죠.”

 







-폴리싱어(political+singer, 정치적 의견 개진에 적극적인 가수) 활동에 대한 지인의 반응은 어떤가요.

“대부분이 말리지만, 전 멈추고 싶지 않아요. 많은 사람이 잘못된 걸 알면서도 선뜻 나서지 못한다는 것이 이유예요. 제가 특별히 용감한 건 아니지만, 잘못된 세상이 만드는 부당함을 감시하고 예방하는 권에 대한 권리는 분명히 있어요. 그들이 하고 싶은 대로 비리를 저지르듯, 나도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외치는 것뿐이에요.”

-2011년 결혼을 극비리에 하셔서 아직 미혼인 줄 아는 사람도 있던데요.

“저야 연예인이라 일거수일투족이 기사화되는 것이 당연해요. 근데 남편은 일반인이고, 사생활이 노출되는 것을 원치 않아요. 그래서 결혼 생활에 대해 굳이 이야기하지 않는 거고요.”

-아내로서 이은미는 어떤 사람인가요.

“집보다 외부에서 일하는 시간이 많아요. 아마 100점 만점에 20점도 안 될걸요. 그래도 요리만은 내 손으로 직접 하려고 해요. 어렸을 때, 어머니가 항상 음식의 간을 보게 하셨던 것에 영향을 받았어요. 어깨너머로 재료 손질법과 요리법을 자연스럽게 터득했죠. 지금도 요리 전에 부모님께 전화해서 물어보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원조 ‘걸크러시’(여성이 여성에게 반할 만큼 멋지다)로 불리는 분인데, 의외의 모습이 있네요.

“전 주관이 뚜렷해요. 그래서 알지만 말하기 힘든 진실, 불이익이 올까 봐 참는 부분을 터뜨릴 수밖에 없는 거죠. 반면 무대 뒤에서는 여리고 감성적인 사람이 돼요. 그래서 음악을 할 수 있는 거죠. 시 한 편을 읽다가 영감을 받고 쓴 곡도 있어요. 문태준 시인의 글을 읽는데, 작은 활자를 한 자씩 읽어내려가다 보니 눈물이 흐르더라고요. 가까운 지인들은 ‘센 언니’로 굳혀진 저의 이미지에 대해 안타까워해요. 실제로는 참 인간미 넘치는데, 대중은 공식적인 자리에서의 직설적이고 독한 이미지만 기억한다며 말이에요.”

-과거 치열한 20대를 보냈기에 그렇게 비치는 것이 아닐까요.

“저의 20대는 한마디로 질풍노도의 시기였어요. 89년 신촌 블루스로 데뷔해 솔로 앨범 1집 <기억 속으로>를 1992년에 냈어요. 그때의 대중은 예쁜 얼굴로 춤을 잘 추는 여가수를 원했어요. 당시 한 가요 프로그램 담당 CP가 ”이은미가 노래 잘하는 건 아니까 얼굴은 어떤지 봐야겠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그때 저는 ‘내가 여배우인가?’ 되물으며 분노하고, 동료들과의 술잔에 위로받는 시간을 보냈죠. 그때 오기가 생겨서 ‘두고 봐.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줄게’란 다짐을 했던 게 떠오르네요.”

-이은미에게 ‘맨발의 디바’란.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에게만 따르는 수식어라 다른 무엇보다 특별해요. 맨발은 나의 뿌리와 같은 단어거든요. 이런 이미지를 벗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어요. 제 노래에 대한 평가 또한 두렵지 않아요. 세상에 내놓는 순간 그 어떤 비판도 들을 준비가 되어 있거든요. 내가 가장 자신 있는 것이 사랑 노래인데, 이걸 아무 걱정 없이 부를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